Saturday, September 15, 2007

미국인은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 기특하거나 혹은 배은망덕하거나
[제국에서 띄우는 편지 ④] 미국인은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나
데니스 하트 (hwangj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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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대한 설문조사에 답하고 있는 학생들.
ⓒ 데니스 하트
설문조사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에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이제는 가을 날씨가 되어가나 봅니다.



지 금까지의 편지에서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떠받치고 있는 일반 시민들의 국가관, 미국 문화의 군국주의화, 그리고 미국민의 세계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오늘은 좀 더 구체적으로 미국 시민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한국의 무기 구입부터 대(對)북한 관계, 구조조정 정책에 이르기까지 개입해온 제국으로서 미국의 의지와 선호는 한국인의 삶에 광범한 영향을 끼칩니다. 한국인으로 살면서 좋든 싫든 미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무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야지요.



그렇지만 반대로 미국인들은 한국과 한국인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제국의 시민들은 한국인들의 생활방식과 소망과 문화적 업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간 단히 말씀드려서, 일반 미국 시민은 한국에 대해 거의 아는 것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이 알고 싶어 하고, 관심을 두고, 같이 나누고 보살피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한쪽이 상대에 대해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면 그 관계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짝사랑에 빠진 사람만큼 딱한 것이 또 있을까요?



대부분 미국인들은 자기네 나라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란 색안경을 통해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을 보며 우선 그 나라가 미국의 이익에 중요한 관련이 있는지 여부를 따집니다.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생각한다면 제일 먼저 한국이 미국의 적인지, 친구인지를 결정합니다. 즉 한국이 미국이 도와주고 구원해준 것을 감사히 여기고 있는 우방국인가, 아니면 미국에 대한 증오와 질투로 가득 차있는 반미국가인가를 알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미국인들의 마음에는 그 두 가지 사이에 있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너, 반미? 친미?"... 유치한 이분법에 갇힌 미국인



예 를 들어 '자유공화국(Free Republic)'이란 보수계 시민단체 블로그에 실린 글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미국을 비난하고 노코(북한 사람들)들과 합작하고 있는데도 우리가 보호해줘야 된단 말인가? 남한 젊은 세대들은 역사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미국이 고마운 줄을 모르고 미군이 한국을 떠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그 바로 아래에는 "남한에는 소수지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미국을 증오하는 좌파집단이 있다, 이들이 노코에게서 지원을 받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이와 함께 "나는 한국인 친구도 많고 그들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대부분 소코(남한사람)들은 대단히 친민주주의적이고 친자본주의적이며 친미주의적이다"라는 식의 글도 흔히 보입니다.



독 자 여러분, 이제 감이 잡히십니까? 미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은 선량하든지 사악하든지 둘 중 하나며, 미국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기특한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고마움을 모르는 뻔뻔한 국민들이고, '반미'가 아니면 '친미'입니다. 한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일반 미국 시민이라면 그 이해나 관심의 깊이가 이런 유치한 양자택일의 사고방식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따 라서 미국의 대중매체가 늘 그렇듯 "친미" 또는 "반미"라는 딱지를 붙여 한국에서 일어나는 논의나 사건이나 인물을 소개할 때, 일반인들은 그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며 복잡한 국제관계 현실을 그저 말초 감정이나 자극하는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포장해놓은 뉴스꼭지들을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합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한국인들은 '반미'라는 개념을 주로 미국 정부의 정책을 반대한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들은 '반미'를 아주 다르게 해석하여 "자유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증오하며, 미국 정부를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미국인 개개인을 혐오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믿 기지 않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미국 정부와 국민을 지나치게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가와 동일시하는 것이 미국인으로서 정체감과 구별되지 않도록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기차게 가르치는 것도 한 원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걸핏하면 텔레비전에 나와서는 "그들은 우리의 자유를 증오한다"면서, 테러리스트들은 미국 사람 개개인을 원수로 여긴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미국인 선생에게 깍듯한 반미한국인, 월드컵 응원에 긴장한 미국인



오 래전에 제가 한국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었을 때의 일화입니다. 당시 거의 매주 데모가 있었는데, 학생들은 벽돌을 깨서 전경들에게 던지고 전경들은 학생들을 향해 최루탄을 쏘는 상당히 격렬한 데모였습니다. 때때로 학생들은 미국 대통령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태우기도 하고 길바닥에 성조기를 그려 자동차가 그 위로 지나가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집으로 가다가 한창 데모중인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아는 학생 몇 명도 거기 끼어서 돌을 열심히 던지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저를 보고는 돌아서서 꾸벅 절을 하면서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했고 저도 "예, 조심들 하세요"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러고는 학생들은 바로 돌 던지기로 돌아갔습니다. 미국 학생들에게 이 일화를 들려주면 매우 놀랍니다. 반미주의자도 미국인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을 상대할 때는 이들이 미국에 대한 어떤 비판이든 개인적인 비판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같은 논리로,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를 비판할 때는 그 나라 국민들도 같이 싸잡아서 비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미국인 친구 중에 서울의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사람이 있는데, 그는 월드컵 기간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와 열광적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국가대표 팀을 응원했을 때 진심으로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타국인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을 내포하고 있는 미국식 공격적 민족주의에 익숙했기에 한국인들이 길거리 축제에서 발산하는 긍정적인 민족주의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민족적 자부심과 기쁨을 한껏 드러냈을 때 그 사람은 외국인인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무서웠던 것입니다.



"미국인처럼 돼 가는 기특한 동아시아인들"



그렇다면 평균적인 미국 시민들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떼 지어 나오셔서 성조기를 흔들며 친미 데모를 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이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나올까요?



앞 서 인용한 블로그에서는 2003년 3·1절에 열린 예의 친미 데모를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를 실었습니다. "반핵, 반김정일, 자유통일, 그리고 미군 철수 반대"를 내세우며 "약 100만명"이나 모일 것이라고 주최 측에서 밝혔던 이 데모에서는 부시 정권의 대북 정책을 전폭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부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이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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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삼일절에 열린 '반핵반김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대형 성조기, 태극기, 유엔기를 펼쳐드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3.1사진공동취재단

이 기사에 달렸던 85개의 댓글 중 다수 의견을 대표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동아시아인들이 기특하게도 미국인처럼 되어가는군! (East Asia eagles up.)"
" 한국에서 반미 데모가 급속히 사라져 가는가 보다. (암, 그래야지!) 친미적인 사람들은 항상 있었겠지만 이제야 시간을 내고 용기를 내서 공산주의자들과 패배주의자들 같은 나쁜 새끼들(scumbags)과 맞서 싸우려고 나왔나보다. 만세!"
"머저리 같은 지도자 때문에 굶어죽는 사람들 보면 북한을 과소평가하기 쉽지만 방심하면 절대로 안 된다!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
"잘하고 있는 거야. 내가 마음이 다 훈훈해진다."
"이 기사 좋은데. 위로 올려라."
"좀 무서운데. 저 사람들 위험하지 않을까? 하긴 북한에서 미사일 쏘면 서울에 바로 떨어지는데 길에 있든 집에 있든 위험하기야 마찬가지지."



위의 댓글에서 한국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미국을 지지하는 데 대해 칭찬해주는 것뿐이고 미국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싸잡아 "나쁜 새끼들"입니다.



제 가 보기에는 <조선일보>나 친미데모에 참여해 성조기를 흔들어 주신 분들이나 제국의 시민들에게 한국을 좋아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대신에 적어도 일부 미국인들에게는 한국인들이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제반 정책과 미국 군대를 더욱 환영하게 되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켜, 뭐든 미국 정부 마음대로 밀어붙여도 된다는 오만한 생각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을 뿐입니다.



저로서는 좀 두렵기까지 한 것은 위 블로그에서 인용한 보수적인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의 미국인보다 한국에 대해 상대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으시려면 녹차 가지고는 안 되고, 아마 소주를 한 잔 들이키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한국은 쿠바 옆, 미국은 싸움 말리러 한국전 참전?... 효순·미선 아는 이 없어



지난주에 제가 가르치는 국제정치학 개론과 미국정치학 개론, 그리고 미국의 대외정책 강의를 듣는 학생 전원에게 한국에 대한 간단한 설문지를 돌렸습니다.



이 설문조사를 실시한 계기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얼마 전 한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했는데, 학생 하나가 "미국 사람들은 효순양과 미선양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저는 미안하지만 미국 사람 중엔 그 사건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따라서 어떻게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하나는 지난번 편지를 쓰면서 미국인들이 세계 지리나 다른 나라에 관한 일반 상식이 많이 뒤떨어진다는 말씀을 드렸기에 우리 학교 학생들은 어떤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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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를 강연에 초대해주신 고등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입니다.
ⓒ 데니스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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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들과 필자.
ⓒ 데니스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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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실시한 한국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는 생각보다도 더 비참했습니다. 거둬진 설문지는 총 70부였는데 효순양과 미선양 사건에 대해(희생자들의 이름은 물론 사건 자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카츠라-태프트 밀약(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하고 일본은 미국이 지배하던 필리핀을 침략하지 않기로 1905년 미일이 맺은 밀약)에 대해서도 단 한 학생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설문지에는 백지 세계지도가 들어있었는데 거기에 한국을 비롯한 몇 개국을 표시하게 했습니다. 한국을 정확하게 표시한 학생은 19%에 불과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에다 한국이라고 써놓은 것은 약과이고 21%는 필리핀, 태국, 베트남, 버마 등 동남아시아 어딘가에 한국이라는 표시를 했습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나 쿠바, 카자흐스탄, 이란 같은 나라를 한국이라고 써놓은 학생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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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니스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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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라고 한국을 엉뚱한 곳에 표시해 놓은 지도. 하나는 쿠바 근처에, 다른 하나는 그리스 근처에 표시되어 있습니다.(I는 이라크, B는 브라질, S는 수단, N은 이란).
ⓒ 데니스 하트
한국



한국과 북한의 국가수반 이름을 물어본 질문에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을 댄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21%는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을 (비록 철자는 엉망이었지만) 비슷하게나마 알고 있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을 아는 학생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것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코미디, 영화 등에서 자주 김정일 위원장이 포악한 정신병자나 독재자로 등장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부 학생은 이름 대신 "광인"이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에 대한 질문에서는 21%만이 1950년대에 일어났다고 바르게 대답했습니다. 61%는 짐작도 못했고 나머지는 1960년대, 1970년대라고 하는가 하면, 심지어 1980년대까지도 나왔습니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에도 60%가 전혀 모른다고 답했고 27%는 북한이 쳐들어와서 남한을 도와주러 갔다든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갔다는 등의 비슷하게 맞는 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 싸우는데 말려주러 갔다든지, 북한을 편들어 주기 위해서 갔다든지 하는 엉뚱한 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을 군사대국으로 착각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어서 영국, 일본, 독일, 한국, 북한 5개 국가 중 군사비 지출은 북한이 제일 적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맞춘 학생은 7%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인들의 업적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해보라는 질문에는 거의 모든 학생이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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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들.
ⓒ 데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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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 엎드려도 미국은 쳐다보지 않습니다



첫 번째 드린 편지에서, 대다수 미국인은 누구보다 축복받았고 누구보다 자유로우며 누구보다 많은 권리를 누린다고 믿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 분들을 포함하여 미국 밖의 모든 세계인들은 미국인보다 열등하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제국은 원래부터 평등한 국제관계를 가정하지 않습니다. 제국주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물론 미국에 종속된 주변국가에 불과합니다. 유럽, 캐나다, 호주 등 몇몇 이른바 '선진국'을 제외한 미국 밖의 모든 주변 국가들은 '제3세계'라는 개념 아래 뭉뚱그려져 막연하게만 이해됩니다. 원래 제3세계 개념을 창시한 분들의 의도와 달리 미국에서 '제3세계'란 말은 우리 학생들 말대로 "가난하고, 인구밀도가 높고, 질병이 넘쳐나고, 무식하고 열등한 사람들이 독재자 아래에서 신음하는 곳"이란 의미로 변질되었습니다. 그 주변국가 가운데 일부는 제국의 질서에 순응하는 친미국가, 나머지는 위험한 반미국가라고 인식하는 것이 평균 미국인의 의식의 깊이입니다.



그렇다면 제국의 주변국에 사는 한국인들에겐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요? 제게 한국 학생들이 한 질문입니다. 저는 외국인이니 조심스럽습니다만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대통령 선거가 곧 다가오니 미국 정부에 한국을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는 것이 한 가지 중요한 선택이 아닐까 합니다. 북한은 줄기차게 미국을 향해 동등한 국가로 존중해줄 것을 요구해왔고 사실 먹혀들어가고 있습니다.



미국 앞에서 알아서 기어주지 않으면 미국이 보복을 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래서 시청 앞 광장에서 성조기를 흔들어 주시는 거라면, 지금 말씀드리지요. 미국은 당신들이 납작하게 기든지 말든지 한국의 국익을 염두에 두는 일은 조금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미국의 대외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 한국인의 안녕과 행복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미국의 이익만이 미국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한국을 우방으로 두는 것이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한 미국은 한국을 지지하겠지만, 한국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 미국은 어떤 추악한 행동이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지도자층이나 일반 시민이나 이런 점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위로가 되는 말씀을 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소주 한 잔 더 하세요.)



앞서 비유로 들었던 짝사랑하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짝사랑의 비유는 권력의 불균형이란 점에서 잘 들어맞습니다.) 일방적으로 구애를 받는 사람이, 자신을 짝사랑하는 사람이 납작하게 엎드리고 매달리고 빈다고 그 사람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요? 스스로 당당하게 서는 사람만이 존경을 받습니다. 국제관계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번 편지에서는 제국 시민의 의식과 대중매체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편지가 마지막이냐고 물어보신 분이 계셨는데 '제국 편지'는 앞으로도 죽 계속됩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